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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23 20:08
사람마다 보배 창고를 가지고 있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0  

사람마다 보배 창고를 가지고 있네 

오늘이 봄비가 내린다는 우수인데 도량은 온통 눈으로 덮였습니다. 매화꽃은 갑작스런 꽃샘 추위에 놀라서
얼어 붙었고 동백꽃은 내밀던 꽃망울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잎사귀에 묻었습니다.
도량은 온종일 세찬 바람에 눈보라가 휘날리고 처마끝 풍경은 날아갈듯 요란스럽게 울어댑니다. 입춘이 지난지 오래지만 온전한 봄은 이렇게 쉽게 오지 않습니다. 비록 수행자가 각고의 고행끝에
풍경소리를 들을 줄 알고 춥고 더운 줄 아는 참나를  깨달았지만 온전히 체득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기 때문에 언하에 대오한 사람이 있고 오랜 세월을 거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깨달은 사람들은 소중한줄 모르고 지내다가 꽃샘 추위처럼 업력이 다시 덮치고 나면 참으로 재발심을 합니다. 그리고 어렵게 깨달은 사람들은 너무나 소중한 체험을 했기에 깨달음을 지키는 나머지 대상을 끊어 선정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직 깨달음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오로지 좌선을 통해서 좌복을 떠나지 않아 절구통처럼 오래 앉아 있지만 지혜가 없다고 비난을 받는 것은 선정에 치우처서 닦기 때문입니다. 
선사들은 말씀하시기를 깨닫기는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듯이 쉽지만 지키고 보호하기란 참으로 어렵다고 했습니다. 깨달음을 얻고나서 
 수행이 더욱 어렵다고 하는  것은 앉으면 금방 선정에 빠져서 하루가 가는것이 금방이라서 선정의 즐거움을 탐하여 현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과거 전생에 익힌 업력을 감당하기엔 선정의 힘만으로는 수행의 힘이 너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선정과 지혜를 쌍수해야 근본적으로 업력이 녹아지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란 범부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이나 보고 듣는 대상을 따라서 울고 웃다가  문득 새소리나 바람소리 또는 꽃이 핀것을 보고 모든것이 오직 이 마음이란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깨닫고 보니 너무 억울한 것은 누구나 본래 가지고 있으며 닦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니 너무나 허탈해서 속았다는 푸념을 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크게 헤메고 고생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깨닫고 보니 모든 중생들이 차별없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가지고 있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믿지 않고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달마대사는 혈맥론에서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눕지않고 한끼만 먹으며 피를 내어 사경을하고 수행을 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아직도 마음 밖에서 헤메는 모습일뿐 참다운 수행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자기가 본래 부처이니 마음 밖에서 부처를 구하지 말라고 했으며 화엄경에서는 이것을 초발심이 바로 정각이라고 했습니다. 선에서는 이것을 돈오점수라고 하며 이러한 믿음을 토대로 비로소 간화선 수행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화두의 의정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조사스님들이 깨닫고 나서 비로소  참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깨달은 이치로는 본래 청정해서 닦을것이 없지만
과거 전생에 무르익은 업력은
쉽게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 쉽게 깨달은 사람들은 방심하다가
크게 몸이 아프거나 특별한 일이 닥치면 혼비백산하여 정신없이 헤메게 됩니다. 한편 옛 선지식들이 깨닫고나서 참으로 수행을 해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남은 생을 수행을 위해서는 목숨을 받쳐도 여한이 없겠다는 확신을 하게되어 다시 한번 죽을 각오로 용맹정진을 시작합니다. 
오후 수행은 자기도 모르게 순간순간 일어나는 생각과 업력을 순간 포착해서 마음도 아니고 대상도 아닌 불성과 하나되는 확인일뿐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익은 업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치라도 방심을 하면 업력을 따라가기 때문에 살얼음을 밟듯이 간절하게 해야합니다. 
한편 보통 깨달았다는 사람들은 다만 이것뿐인데 무슨 수행이 필요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체험을 들어보면  그 동안 보고 듣는 대상과 생각들을 자기와 동일시해서 몸을 자기로 삼았다가 사는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죽으려고 했지만 동일시 했던 몸과 마음을 벗어나니 너무나 가볍다고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깨달음의 체험임에 틀림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남방 사념처 수행의 공덕으로 신수심법이 공함을 깨달은 소승위빠사나입니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에서는 오직 마음이 정과 혜를 함께 가지고 있으니 몸에 의지하지 않고 느낌이나 호흡에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오직 대승의 마음을 의지하여 수행을 하는데 이것이 대승위빠사나입니다.
한국 위빠사나에 있어서 초기 전법사이며 많은 위빠사나 서적을 번역하고 간행한 김열권거사님과 오랜 탁마를 통해서 이러한 위빠사나의 두길을 깨닫고 보니 수행의 바른 길이 정립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초등학교 육학년때 모든 언어가 의심스러웠고 호흡이란 말마저 의심했더니 숨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절에 가서 알아가지고 오라고 했고 중학교 때는 사람이 태어날때는 어디서 왔으며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불교서점에 들어가서 책을 고른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 참선명상이 아닌 신선이 된다는 호흡법을 익히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공부는 안하고 호흡법을 익혀서 신선이 되려고 뒷산에 올라가서 너무 열심히 했더니 때로는 몸과 마음이 사라지고 구름을 타고 다니는듯 가볍고 신선해서 선생님께 물어보니 아무래도 이상하니 절에 가서 알아가지고 다시 오라고 했지만 아직 못가고 있습니다. 절에 와서도 호흡법을 익힌 인연인지 국선도의 대가를 만나서 호흡법을 했더니 겨울에도 추위를 모르고 오래 앉아도 힘이 들지 않아 수행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고행으로 어쩌다가 상기가 되어 그간의 고행을 점검을 해보니 단전호흡은 부처님 호흡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팔십년도 말에 남인도의 고엔카 위빠사나센타 수행코스에 참여하였습니다.
부처님의 호흡이 단전호흡과 다른것은 어떠한 테크닉이  없고 다만 들어오면 들어오는 줄 알고 나가면 나간줄을 알고 짧으면 짧은 줄 알고 길면 긴 줄을 여실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줄 알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줄 압니다. 마침 유학하고 있는 도반스님의 도움을 받아 함께 참여하여 선지식 고엔카님과 문답을 통해서 소중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한국의 선원에서는 호흡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외도들의 수행으로 취급하여 이야기를 할수가 없었고 너무 급하게 수행을 하다가 상기병에 걸리면 수행을 포기해야 한다고 선배스님들은 말을 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의 호흡은 어떠한 테크닉도 없이 다만 호흡을 지켜보고 알아차릴 뿐이지만 업력을 쉬게 합니다. 선지식 고엔카님과의 문답을 통하여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한편 다람살라에서 청전스님을 만나  달라이라마 존자님를 뵙고 자비스러움에 감동을 받았고 티벳 수행법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때 청전스님은 고행으로 온통 머리가 하얗게 센것을 보고 영양을 보충해 줄테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올라운드 트레킹을 성공해서 한국 비구의 자존심을 세워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당시에는 한국 사람들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올라운드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트레킹 장비와 상식도 없이 네팔 포카라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장이 포터없이 혼자서 가면
죽는다고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트레킹 비자를 받았습니다. 오직 걸음마다 호흡을 살피면서 올라갔지만 오천미터가 넘는 험한 고갯길을 넘고 내려오는 길에 무리했던지 쓰러져서 이틀 동안 기어서 내려왔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야속했지만 위빠사나를 통한 철저히 호흡을 관하는 힘이 없었다면 죽었을것 같습니다. 
다시 포카라에 도착하여 산에서 쓰러졌지만 죽지 않고
살아왔다는 생각에  고향 생각이 나고 부모 형제들이 그립고 부처님의 가피에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다시 인도로 들어와서 유럽으로 떠나 삼개월 동안 노숙을 하면서 오직 호흡을 살피고 여러 수행처를 찾아서 수행자들과 좋은 탁마를 통해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기억이 나는 것은 스위스 베른 근처에 있는 계곡에서 노숙을 하면서 옷을 빨아입고 언덕에 오르니 음식점 주인이 동양의 승려가 아니냐고 하면서 저녁 공양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이때의 기분은 마치 석가모니가 고행을 포기한 끝에 네란자라
강가에서 수자타 소녀가 준 유미죽을 받아먹는 기분이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마침 걸망속에 가지고 간 동양화 한폭을 주었더니 너무 기뻐하던 얼굴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다시 강가로 돌아와 밤을 세우며 호흡을 살피던 그곳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한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역사적인 현장에서 남북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 했는데 마침 세계기독인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베를린에 있는 이차 세계대전때에 십자가가 부러진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보고 옆에 있는 소녀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복장은 봉변을 당할까봐서 약간은 위장을 하였는데 남북의 기독교인들이 우리는 종교로써 하나가 되었다고 열렬히 환영해주었습니다. 그때의 감격을 잊을수 없으며 기독교의 초기 명상을 체험하는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한편 다시 이태리 로마의 교황청을 순례하며 성스러운 벽화의 거룩함과 대리석으로 만든 교황청의 웅장함에 압도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 로마의 여러 신전을 둘러보며 희랍 성인들의 지혜를 배울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배를 놓치고 간이 기차역에서 밤을 보내며 들었던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그것은 나그네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는 모국어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꽃샘 추위가 오늘은 많이  풀려습니다. 아직 수행이 부족하지만 점점 늙어가면서 업력은 녹아지고 차차 익어갈것 같습니다. 이렇게라도 안정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많은 방황과 고행의 인연끝에 얻은 작은 소득인것 같습니다.

설중매

사람마다 보배 창고 있거늘
먼길 밖으로 찾아서 헤메네
뼛속 깊이 추위 지나고 나니 
눈속에 매화 향기 코끝을 찌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