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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05 19:20
영원한 자유 출가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3  

영원한 자유 출가

관음료 옆에는 수선화가 햇병아리처럼 노란 꽃대를 
살포시 내밀었습니다. 지난 겨울이 혹독 했기에 찾아오는 봄의 전령사들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한편 스님들은 동안거 해재를 맞이하여 다시 만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선지식을 찾아서 안거 동안에 있었던 경계를 점검하고 코로나의 대재앙 앞에서 생사가 참으로 두렵지 않는지 다시 재발심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삼일절을 맞이하여 저마다 감격의 눈물인듯 남쪽에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북쪽에는 유래없는 폭설이 내리고 한바탕 교통대란이 일어났습니다.  봄이 오면 황사가 같이 오는 것이 그간의 상식이었지만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공장 가동이 줄어들어 서울에서도 별을 보는 즐거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엔에서는 급속한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의 증가를 줄이지 않을 경우 지난 겨울처럼 지구촌 곳곳마다 폭설과 한파로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환경전문가들은 이러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인류 대재앙이  코로나 보다 심각하며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하니 참으로 두렵기만 합니다. 옛날 인도에 갔을때 사람들은 한국에서 왔다고하니  빨리빨리라고 하면서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왜 웃었는지 몰랐는데 그 동안 얼마나 정신없이 살아왔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빨리 달리게 되었던 것은 산업화를 통하여 빨리 가난을 탈출하려는 간절한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먹고 사는 것은 풍족해 졌으나 자연이 파괴되고 심성마저 황페해져서 자살률 세계 제일이라는 부끄러운 단면을 함께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삶이 난파선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브레이크가 터져버린 자동차처럼 끝없이 달려갈때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멈출수 있을까 이제는 한번 돌이켜 살펴야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이 이처럼 신음하며 성주괴공의 무상함을 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춘궁기에 화려한 왕궁을 나와 사대문의 유행을 통해서 당신에게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생노병사의 고통을 만났습니다. 먼저 동문 밖에서는 허리가 굽은 노인을 보았고 남문에서는 병자를 보았으며 서문에서는 시체가 나가는 것을 보면서 생노병사가 모두 고통이라는 것을 철저히 자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북문에서 수행자를 만나 마침내 발심하여 영원히 자유로운 출가를 결행 하였습니다. 한편
소승은 철없는 나이에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하게 모든 언어가 의심스러웠고 호흡이라는 말을 의심했을 때는 숨이   막혀서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또한 사람은 태어날때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뒷산에 있는 절에 주지스님을 찾아가서 물었더니 송광사로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큰 공부를 한다기에 앞으로 크면 고시 공부를 시키는 줄 알았는데 설걷이하고 밭에 가서 새를 쫒는 행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염불을 하라고 했지만 하기 싫어서 많은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절에 와서 중고등 학교를 다니는 임시 출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체 언어에 대한 의심은 가시지 않았고 고시 공부를 해서 출세도 해야지 하는 두가지 생각이 함께 따라 다녔습니다. 하지만 5.18 광주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에 생사 문제가 목까지 꽉 차 올라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간절한 발심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자 생활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자마자 구산 방장스님께 인사를 드리며 방금 계를 받았는데 흔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방금 수계 받은 놈이 건방지다고 주장자로 후려 갈기려고 하면서 승가대학에 들어가서 경전을 보며 습의를 익히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생사 문제가 급하여 문경 봉암사 선방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은사스님은 구산스님이 큰선지식이지만 인연이 안되니 고향  근처에 있는 봉암사에 서암 전종정스님이 선지식이니 찾아가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봉암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으로 신라 헌강왕 7년에 지증도헌이 열었습니다.  최치원은 선사의 비문에 구산선문의 개산조 가운데 유일하게 당나라에 가서 구법을 하지 않았으며 유불선을 통합하는 한국적인 선사상을 전개하여 육바라밀과 육신통을 구족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한편 봉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립선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수행자들이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희양산은 천길 벼랑 히말라야 설산처럼 웅장하게 솟았는데 마침  석양이 걸려있어 거대한 바위는 석불의 입상처럼 장엄했습니다. 스님들은  무술을 하는 모습이 위협적이었지만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봉암사는 육이오 전에 오직 부처님 법되로만 살아보자고 했던 성철스님의 봉암사 결사로 유명한 한국 불교의 역사적인 도량입니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도량은 육이오 사변으로 인하여 다시 쇠락된 칠십년도 말기에 어수선한 모습이었습니다. 선방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양산박 스님들은 여기는 무술로 수행을 하니 큰스님이 계시는 상주군 화북면 원적사로 찾아 가라고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다시 길을 물어 오십여리를 걸어서 찾아가니 어스름 저녁에 서암 큰스님께서는 희미한 촛불속에 저녁 공양을 하시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수선화

참나를
잊지 마세요
봄비
그치고 나니
관음료 옆에 
수선화

햇병아리처럼
걸음을
옮기고 있네

문득 돌이키니
일찌기 한 걸음도
옮기지 않았네

봄은 벌써
이만큼 오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