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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17 16:22
첫 안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0  

봉암사 태고선원 첫 안거

해질녁 하늘의 흰구름이 산목련 가지에 내려 앉으니 천마리의 백학들이 수를 놓은 듯 하얀목련이 피었습니다.
봉암사는 구산선문의 하나로 사조 도신선사의 법을 이은 법랑과 신행, 준범, 혜은,지증도헌으로 이어지는 북종선의 맥을 이은 유일한 도량입니다. 중국의 선종은 양자강을 중심으로 이남의  돈오를 주창한 육조혜능의 남종선과 이북의 신수를 중심으로 하는 점수의 북종선을 양대 산맥으로 발달했습니다. 
봉암사는 지증도헌이 개창한 희양산문으로 구산선문의 개산조들이 육조혜능으로부터 남악혜양, 마조도일, 백장과 서당지장으로 이어진 선맥을 전수 받았지만 유일하게 입당 구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선사는 신라의 전통적인 유불선을 통합하고 육바라밀을 계정혜 삼학으로 실천하는 독자적인 한국 선사상을 확립하고 두타행을 실천하여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흠모하였습니다. 봉암사는 육이오 전에 성철스님과 향곡,자운, 청담,법전스님을 중심으로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살겠다고 하여 치열하게 정진했던 결사의 도량입니다. 또한 오늘날 조계종의 기초가 되었던 율장및 의식과 복식이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서암스님의 원력으로 도량을 복원하여 새롭게 결계하고 선풍을 진작시키는 대작 불사를 성취하여 조계종의 종립선원으로 자리 매김하였습니다. 또한 수행가풍을 보호하기 위해서 초파일 날에만 개방되는 유일한 도량입니다.
마침내 육이오 이후 쇠잔했던 선문이 바로 서고 역사적인 태고선원이 개설되었습니다.
오직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백장청규를 중심으로 선종의 정신을 회복하여 한국 불교를 중흥시키자는 원력으로  모인 수행자들의 눈빛은 참으로 깨어있고 날카로웠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선객들은  안거를 위해서 저마다 소임을 정하고 노동과 정진을 병행하는 청규를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기라성 같은 구참 선객들이 모였는데 적명,혜국, 현기, 인각, 무여,일오선사를 비롯하여 삼십여명의 스님들이 역사적인 첫 안거에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모인 대중 가운데 가장 막내로 다각 소임을 맡았고 조실스님 시자 소임을  겸하였습니다. 원적사에서 큰스님과 약속한 삼년 결사를 마치고 처음 개설한 봉암사 선원 하안거에 참여하여 여러 대덕스님들과 함께 선방에서 정진을 하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였습니다. 한편 다각 소임과 시자 소임으로 선방청규를 익히고 선배 스님들의  덕행을 배우느라 바빴지만 온통 환희심으로 충만하였습니다. 특히 법련스님은 도감 소임을 맡아서 채전을 정성으로 가꾸고 평생 대중을 시봉하는 모습은 참으로 오늘날 선원의 풍토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구도자의 모범이었습니다. 또한 큰스님은 수시로 대중스님들과 함께 정진을 하며 경책을 하셨고 상당법문과 소참 법문 만참으로 대중 스님들의 수행을 점검하고 격려하였습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수행자들과 독대로 친절하게 지도하는 모습은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특히 조실스님은 지성인들이 찾아오면 참선법문을 알아들을 수 있는 현대적인 언어와 풍부한 유머로 쉽게 잘 하시기로 이름이 나셨습니다.
그러나 백운암 토굴에서 정진하며 깨달았다고 점검 받으러 내려온 수좌스님은 키가 이미터나 가까이 되었고 장발에 수염을 기른채로 소참 법회에  참여하였습니다. 토굴 스님은 서로 묻고 대답하는 치열한 법전 끝에 큰스님의 가르침을 수긍하지 않고 문을 박차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조실스님은 시자에게 명하여 잡아오라고 했지만 뒤를 쫓아가보니 벌써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첫 안거는 이렇게 활발발하게 오로지 법을 거량하고 치열하게 탁마하고 노동하며 늘 긴장감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참 스님들은 묻는 것마다 따뜻하게 대답해주었고 처음 대중 생활에 다각 소임을 맡아 차맛이 없어서 실수가 많았지만 친절하게 격려해주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대중 선방은 선배스님들의 덕행을 배우고 선원의 가풍을 익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큰방 생활은 남방 스님들처럼 독방 생활이 아니라 마치 군대의 막사와 같아서 대중들이 함께 취침하였지만 조금 자고나면 살짝 일어나서 다시 앉아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산을 넘어 내려오는 등산객들과 시비를 하는 일로 소란스러웠는데 오로지 청정수행 가풍을 보호하려는 스님들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중공사를 열어서 전면적으로 산문을 봉쇄하고 불침번을 정하여 보초를 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대중생활을 익히고 배우다 보니 어느덧 반결재가 지났습니다.  대중들은 반살림을 맞이하여 뒷산을 타면서 봉암사의 산세와 기운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서로 찬탄하며 더욱 용맹정진을 다짐했습니다.
안거가 이제 후반으로 넘어가니 대중 가운데서 나태한 수행자들이 나오는 까닭에 입승스님은 더욱 수행을 독려하였습니다. 한편 토굴스님이 안거중에 도망 친것은 잘못 되었고 참으로 깨달았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해재를 며칠 앞두고 문제가 된것은 아랫 마을에 신심있는 군자 보살님 부친이 돌아가셨는데서 발단이 되었습니다. 대중 스님들이 각자 개성껏 염불하고 축원을 하자고해서 동의 했는데 막내인 다각 차례가 와서 전라도 육자베기를 한자리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웠더니 건방지다고 참회를 하라고 했지만 않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이 조실스님한테까지 들어가서 나이 어린 시자로서 선배스님들의 요구되로 참회를 하고 하심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사가 본래 없는 것을 원적사에서 깨달았다고 했지만 주장자로 죽도록 실컷 얻어 맞았습니다. 이래도 생사가 없다는 말이냐고 끝까지 추궁하였지만 
아픈것이 없다는 생각에 공부의 활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대가 본래 생사가 없다면 뭣 때문에 벗어나려고 그간 고행을 했으며 또한 호흡법을 통해서 얻은 작은 식광의 경계를 가지고 소란을 피우냐고 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맑은 눈에 띠끌만 더하여 눈병을 만들었다고 크게 경책을 했습니다. 또한 유리독 속에 갇힌 것과 같아서 무기공에 빠졌으니 현실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백운암 토굴에서 깨달았다고 했다가  
안거중에 도망친 스님도 식광의 경계를 가지고 깨달았다고 하니 마치 도적을 자식으로 삼는것과 같아서 차라리 아무일도 없는것이 오히려 좋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본래 부처여서 수행을 따로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고통의 현실을 벗어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고 부처님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상관으로 제자들에게 애욕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비구들이 허무함에 빠져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호흡을 살피라고 하며 안반수의경을 설하고 들숨과 날숨을 살피는 아나파나쌋티를 가르쳤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선지식이었던 전강선사는 수행중 머리가 터지는 상기병 때문에 후학들에게 올라간 기운을 다스려 선정에 들어가는 방편으로 단전호흡을 겸한  화두법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암 조실스님은 임맥과 독맥이 뚫리고 차크라가 열리고 나면  환희심에 집착되어 수행에 장애를 입기 때문에 경책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식들 마다 조도의 방편이 다르고 문중마다 다른 가풍이 생겼습니다. 한편 중국의 조사들은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이것이 조사선으로 일체 방편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나서 비로소 참다운 수행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보림이라고 합니다. 육조스님도 깨닫고 나서 사냥꾼들과 십육년을 보임하고 
나서 전법의 인연을 만나 조계산 보림사에서 널리 교화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조사가 직지인심으로 바로 가리켜 주었지만 깨닫지 못하면 스스로 의정이 되고 의단 독로가 되어서 마침내  타파하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간화선이라고 합니다. 한편 간화선에서 수행이 필요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한마디 언구로 구경의 깨침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보고 깨닫지 못하면 이것이 화두가 되고 의심을 타파하여 생사대사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것을 어쩔수 없어 간화선에서는 수행이라고 이름합니다. 그래서 조실스님께서는 오늘날 현대인들은 빠른 것을 좋아하니 오히려 지름길인 간화선이 시대에 맞는 가장 빠른 수행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기 때문에 인연을 따르지만 어떤 수행법에도 머물지 말고 향상일로의 길로 나아가야합니다. 금강경에서도 모든 법은 뗏목과 같아서 버려야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간 호흡법을 익혀서 얻은 맑은 경계가 업이 되어 오히려 성품을 가리는 장애가 되었습니다. 한편 조실스님은 마침 군에 가라는 영장이 나왔으니 이왕이면 최전방으로 가서 그간 얻은 것은 버리고 보통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보통 사람이 되기 어려운 것은 범부들은 바깥 대상을 따라서 울고 웃으며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수행한다는 사람들은 법에 집착하여 현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아직 수행의 힘이 없는데 군대 영장이 나와서 참으로 억울했지만 최전방으로 가라는 큰스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하얀목련 

해 질 녁 하늘의 흰 구름이
산목련 가지에 내려 앉으니 
천마리의 백학이 수를 놓고
일색의 천진을 누설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