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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27 17:32
명상 어떻게 할 것인가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5  

명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은 부처님의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을 맞이하여 겨우내 묵었던 도량 안밖을 대청소합니다.
진달래는 어느새 꽃불로 번져 산꼭대기에  오르고 이제 법당 뒤에는 벚꽃이 피고 있습니다. 겨우내 도량에 켜켜이 쌓였던 낙엽을 청소하고 묵었던 텃밭을 갈아엎어 지혜의 씨앗을 뿌립니다. 그간 무르익은 무명의 거름을 끌어내고 고랑을 예쁘게 다듬어 씨앗를 뿌렸더니 볼수록 뿌듯합니다.
부처님의 출가 재일과 열반 재일은 음력 이월 팔일과 보름날입니다. 그래서 절에서는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과 철야정진으로 기념하고 새로이 발심하는 날입니다. 절집의 사대 명절에 속하는 출가와 열반 재일은 해마다 꽃피는 삼월 온 세상이 들뜨는 계절에 찾아와 수행자들의 살림살이를 경책하고 점검하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일체 공덕을 갖추고 도솔천에서 호명보살로 계시면서 사바세계의 인연을 두루 살피다가 네팔 룸비니 카필라국에 정반왕의 태자로 강림했습니다. 싯달태자는 일찌기 태어나면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옮기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높다는 온전한 인간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한편 사대문의 출입을 통해서 제행무상을 느끼고 위대한 포기를 통한 욕망의 성문을 박차고 새벽에 출가를 결행했습니다. 보통 범부들은 세상이 무상하여 생사를 떠나 따로 열반을 구하려고 하지만 본래 부처라는 입장에서 보면 이미 구원겁 전에 성불하신 부처님이 자비방편으로 보통 사람으로 출현하여 생로병사를 보이시고 열반을 나투신 것입니다. 한편 부처님의 출가는 모든 중생들이 본래 성불이어서 여래와 더불어 조금도 차별이 없음을 증명해 보여주기 위한 한바탕 연극이었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부처의 씨앗을 감추고 있지만 수행의 과정을 통하여 열반을 증명하지 않으면 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경전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지나온 수행을 돌이켜 보면 어린 나이었지만 생사가 두렵고 무상함을 느껴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하여 무조건 빨리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인도의 고행 주의자들처럼 몸이 욕망의 덩어리라고 생각하여 극도의 고행을 통해서 욕망을 제거하려고 몸을 원수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참 기운이 좋은 나이라서 해결이 안되니 스스로 자해를 했던 끔찍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단전호흡을 통한 성명쌍수의 차크라를 여는 체험에 매달려 극도의 선정을 익혔습니다. 그러나 몸은 차크라가 열리고 유체 이탈이 되어 신비한 음식을 받아 먹고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지만 선정에서 나오면 깨져버려서 참으로 허탈하여 고통스러웠습니다. 이것도 수행의 힘이라서 또한 즐거움이 있으니 버리기란 더욱 어려웠습니다. 비록 큰선지식이 가까이 있어 호된 경책도 받았지만 쌓인 선정력이 있기에 오래 앉아 있는 즐거움이 있고 작은 지혜가 발현되어 보통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수행이 아니기 때문에 속으로는 답답하고  무기력하여 벗어나고 쉽지만 작은 선정의 기쁨을 버리기란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참다운 출가란 마치 길을 가다가 우연히 특별한 돌덩어리를 발견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돌속에 금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제하려고 용광로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수행의 시작은 자기 안에 본래 부처를 감추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존귀하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곧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부처님의 탄생게입니다.  한편 이러한 진실을 믿고 탐진치 삼독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수행을 통해서 모든 이웃들이 함께 깨달음을 얻어 고통을 벗어나기를 발원하는 간절한 서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를 하여
처음에는 선정주의자였던  알라라깔라마와 웃타카라마푸트라를 만나서 최고의 선정인 비상비비상처정에 이르렀지만 깨고 나면 다시 허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래 들고 남이 없는 무루의 선정이 아님을 알고 포기를 했습니다. 다시 고행 주의자를 만나서 극도의 난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하산을 했습니다. 마침 산을 내려오다가 나이란자라 강가에서 수자타 소녀가 준 유미죽을 받아먹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칠일 칠야의 용맹정진을 통해서 새벽에 빛나는 샛별을 보고 마침내 정각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깨닫고 나서 다시 삼칠일 동안 선정에 들어 그간의 수행을 돌이켜보며 이러한 깊은 깨달음을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을 하여 그데로 열반에 들려고 했지만 제석천신의 간절한 요청에 법을 설하기로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선정속에서 돌이켜 반조해보니 정각을 이루기 전에 배우고 익힌 선정은 마음 밖에서 얻은 들고 남이 있는 유루의 선정이었습니다. 이것은 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결국에는 무너지지만 본래 갖추고 있는 자성의 선정과 지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바른 견해를 정립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은 것은 일체 밖으로 흐르는 생각을 거두어들여 안으로 회광반조해 보니 실체가 없지만 인연을 따라서 생멸하는 연기법의 작용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새벽에 별을  보자마자 보는 것이 바로 성품으로 대상인 별과 둘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깨닫고 보니 또한 별이 아니더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일체 삼독의 불꽃이 영원히 꺼저버린 열반을 성취하여 길 위에서 49년간 설법으로 중생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시고 마침내 쿠시나가라에서 위없는 열반에 드셨으니 참으로 위대한 성인의 너무나 아름다운 인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범부들은 생사란 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괴로운 것이어서 생사를 싫어하여 따로 열반을 구하려고 합니다. 부처님은 깨닫기 전에 많은 수행자들을 찾아다니고 여러 수행 방법들을 익히면서 많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고통를 싫어하여 마음 밖에서 구하는 수행은 조작이어서 결국에는 허망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최초의 설법인 사성제에서
세상이 무상하여 고통이라고 설한 것은 무상함을 통해서 진실한 실상을 드러내서 항상함을 증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고성제를 설한 뜻은 철저하게 고통을 자각하면 바로 실상은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제법이 무아인줄 알면 일체가 나 아님이 없으니 제법이 본래 청정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상락아정이라는 열반의 사덕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한 생각 번뇌가 일어나거나 대상을 만나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끊어 없애는 것을 수행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세상에 성업중인 명상중에는 지수화풍의 사대로 이루어진 허망한 육신을 상상의 칼로 자르고 스트레스의 대상을 상상의 도구로 폭파시키는 명상이 크게 유행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몸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착각하여 온갖 상상의 수단으로 폭파시키면 잠시 스트레스가 해소되어 시원한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뿐이고 폭력성이 업이 되어 커다란 장애를 입게 되기 때문에 삼가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이러한 수행의 병폐를 벗어나려면 자애및 자비명상을 통해서 자비심을 길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뇌과학자들은 자비심이 극대화되면  스트레스를 벗어날수 있는 세라토닌이 가장 많이 분비가 된다고 하니 자비심이야말로 최고의 명상입니다. 또한 결가부좌로 오래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깨달음이 온다고 하여 선정에 치우쳐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때는 여기에 동참해서 몇철을 결가부좌로 오래 앉아 보니 차크라가 열리고 선정의 힘으로 하루 종일 오래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몸이 꼼짝도 않으니 사람들은 마치 깨달은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임독맥이 돌아가니 오랜 몸의 장애를 고치는 효과는 있었지만 깨달음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송광사 수련원에서 지도법사로 십여년 동안 수련생들과 함께 천팔십배를 하고 때로는 동호인들과 삼천배를 했는데 초심자들에겐 극기 훈련과 같은 뿌듯함을 주고 성취감을 주니 좋았습니다. 그러나 삼천배 절수행에 집착한 나머지 성철스님의 가르침인 진정한 하심으로 방하착을 깨달은 동호인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달마대사는 혈맥론에서 오래 앉아 있거나 기운을 돌리는 것으로 수행을 삼거나 피를 내어 사경하거나 단식을 하는 극한 고행으로 수행을 삼지 말아야 한다고 경책을 하였습니다. 한편 요즈음 잠시 모든 것을 멈추는 멍때리기 명상이 유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방법은 잠시 스트레스를 벗어나려고 하는 현대인들의 안스러운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명상이라고 오래하게 되면 현실을 잊어버리고 무기력해지니 조심해야 합니다
. 요즈음 서구에서 일어나는 명상의 열풍은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와 건강 뿐만 아니라 능력 계발의 도구로 수입되어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온갖 명상이 유행을 하여 수업료도 보통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제시한 올바른 수행의 기준은 참을 수 없는 것을 능히 참고 모든 고통을 벗어나는 조건없는 자비심이야말로 참다운 명상의 목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조실스님은 그간  잘못된 수행병을 고처주려고 호되게 주장자로 내려치고 최전방으로 가서 인욕을 배우고 보통 사람들과 함께 다시 태어나 참다운 발심을 하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아상에서 벗어나 자비심을 갖춘 보통 사람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고요함을 기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능력을 계발하는데 명상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뇌과학자들은 명상의 탁월한 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기업과 병원에서는 앞다투어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헤메는 사람
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명상의 지도자를 만나야 하지만 인연이 안된다면 호스피스 병동이나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봉사를 통해서 인욕과 헌신으로 발심을 하고 자비심이 나오는지를 살피면 잘못된  명상의 병을 벗어날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 이치적인 치유 방법은 오래 앉아 고요함에 머물면 마치 가위 눌린 것처럼 답답해지고 심하면 일체가 허무하다는 생각에 붙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마치 블랙홀이 일체 빛을 삼켜버리듯이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생각에 빨려 들어가게 되어 사는 것이 재미가 없고 궁극에는 공부길을 잃어 버립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답답하며 허무하다고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주인공이니 이것을 바로 자각하여 회광반조하면 신령스런 성품이 출현하게 되어 바로 벗어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멍한 상태에 치우치지 말아야 하며 아는 마음인 맑음을 성품으로 삼아 집착하여 취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백용성 선사는 각해일륜에서 경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조국사는 수심결에서 오직 고요함과 지혜가 한 조각을 이루어 틈이 없으면 머지않아 돈오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명상은 세상의 어떤 즐거움보다 큰 것이어서 능히 세상의 욕망을 끊어버리고 구경에는 해탈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화두를 드는 사람이 들고 남이 있는 잘못된 선정을 취하면 바로 화두를 놓치게 되고 공부 길을 잃게 되니 선지식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아까운 세월만 보낼뿐 참으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아직 화두의 뜻이 남아있는 생멸의 화두는 생사와 열반을 둘로 보는 착각을 끊지 못하고 마음에 의혹이 남아있어 끝없이 헤메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아무런 사량이 없어 맛없는 활구가 아니면 생사가 곧 열반이라는 불이법을 체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열반재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점검해 봅니다.  
한편 아직 수행이 부족하여 앞으로 삼십년은 하심하고 점점 익히려고 합니다. 요즘은 백세 인생이라서 노년기의 지루한 시간을 오락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바른 수행길로 도반을 삼는다면 좋을 것같습니다. 오직 바른 법을 의지하고 끝없이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열반 유훈을 다짐해 봅니다.

       벚꽃 

선방 앞에 벚꽃
일색의 춘몽을
불이문이 점두하니
시방에 봄 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