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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7 10:26
개조심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80  


 

새해들어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에 처마끝 풍경이 떠는 소리가 더욱 요란합니다. 이번 겨울 추위로 한강물이 유사이래 가장 빨리 얼어붙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강추위에 놀라지만 수행자는 춥다는 감각이 극에 달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여 추운줄 아는 성품을 바로 화두 의정으로 돌이켜 본래 추위가 없는 자성 광명을 깨달아 안락의 땅에 안주합니다.

무술년 새해는 황금 개띠해라고 하여 역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국운이 모여서 상승하는 좋은 해라고 합니다. 새해 벽두에 열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은 또 한번 한류가 확산되는 평화와 문화올림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는 먼 옛날부터 서로 믿음으로 사람과 함께 동고동락하였고 더구나 요즈음은 견공이 죽으면 49재까지 모셔주는 반려견 천만의 시대입니다. 이제 모든 생명의 무게는 본래 평등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술년 새해에는 더욱 확산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어느날 학인이 찾아와서 조주선사에게 물었습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선사는 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깨닫고보니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라고 했고 조주선사도 개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으니 확실한 믿음을 성취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모든 수행의 이론이 성립되고 시작되지만 만약 믿음이 성취되지 않으면 끝없이 밖으로 부처를 찾아헤메게 될뿐 어떠한 공덕도 이룰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림사에는 2년전 어느 늦은 봄날에 털이 빠지고 형색이 남루한 유기견이 찾아왔습니다. 마침 적적하고 문화재가 많아서 항상 걱정이 되던차에 인연이지 싶어서 거두어 키우기로 했습니다. 우선 견공이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된장국에 밥을 말아주고 축생의 어리섞음에서 벗어나라고 반야라 불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간 주인에게 버림받고 병들고 굶주림에 지친 나그네였지만 눈에는 독기와 원망의 눈빛이 아닌 평화로움에 마음이 더욱 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친자식을 얻은 듯 정성으로 간호를 하였더니 반야는 어느덧 부처님 도량에 감사하고 안심하는 듯 병으로 인하여 빠진 털이 점점 자라고 복스러운 모습으로 변해서 신도들의 귀염둥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반야는 더 이상 병들고 굶주린 외로운 나그네가 아니라 당당하게 불성을 회복하여 도량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간 거리를 헤메다가 지금은 돌아와 법당앞에 앉아서 눈을 지긋히 감고 쉬고 있는 모습은 어리섞음을 반복하는 기나긴 축생의 업식성을 떨치고 마치 깊은 선정에 든 모습입니다.

반야의 집 앞에는 요즈음 추위속에 떨어질 듯 말 듯 아찔하게 매달린 홍시가 농익어서 달콤하기 그지 없습니다. 혼자 먹기에 아까워 나누어 먹으면서 반야는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달리고 사람들이 선원에 들어오면 짖으면서 자유자재로 반야를 연출해내고 있습니다.

반야는 인도말이고 우리말로는 지혜이며 아는 성질입니다. 사람들은 추우면 추운줄 알고 더우면 더운줄 압니다. 하지만 춥고 덥다는 대상에 따라가서 아는 성질인 반야를 망각해버리고 고통을 달게 받습니다. 하지만 수행자는 경계에 따라가지 않고 바로 아는 성품을 돌이키면 추위는 흔적도 없이 달아나고 오직 모르는 성품이 현전합니다. 여기에서 고요함을 취하여 화두가 없으면 무기라하고 곧 고요한 한줄 아는 것을 바로 화두의정으로 돌이키면 성성적적의 화두삼매를 이룹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시 성성함을 취하여 아는 것이 성품이다는 알음알이를 내면 화두가 없어 성성하지만 적적을 상실하여 다시 산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에는 알음알이를 다시 돌이켜 알고 모르는데 상관이 없는 본래의 성품을 의정으로 회광반조하면 알음알이는 바로 소각되어 성성적적의 화두삼매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정혜쌍수의 화두의정으로 날이가고 달이 깊어지면 오직 모를 줄아는 성품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을 견성이라고 한다. 지금 동안거에 참여하여 수행하는 스님들은 점점 깊어가는 화두삼매에 추위를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어느덧 제방에서는 화두삼매가 점점 깊어가고 마을에는 김장 김치가 점점 익어갑니다. 그런데 뒷 마을에 혼자사는 노보살님이 지병으로 입원하여 시내에 있는 자식집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키우는 개를 팔았으면 하는데 손자가 팔려가면 죽는다고 절에서 새끼와 함께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절에 사는 대중들과 깊이 상의하여 받아주겠다고 연락을 했더니 손자와 함께 너무 기쁘다고 하면서 지병이 다나은듯하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래서 새끼는 바라라는 불명을 지어주고 어미개는 이상하게 마을에 살면서도 여태것 짖지를 않는다고하여서 꿀먹은 벙어리처럼 묵묵히 수행을 하라고 밀다라는 불명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 옆에서 키우기로 하고 견공들의 불명을 모두 합치니까 반야바라밀다가 되었습니다. 대중들은 반야바라밀다라고 함께 합창하면서 도량에는 한바탕 웃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키울 걱정이 앞서고 한꺼번에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니 조용한 천년고찰이 시끄럽습니다. 남전보원선사의 제자 자호선사는 사나운 개를 키우면서 개조심이라고 써붙이고 수행자들을 경책하였습니다. 자호의 개는 위로는 머리통을 물어 깨버리고 중간으로는 심장을 꺼내먹어버리고 아래로는 발목을 물어 거래를 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수행자들의 사량분별과 애증과 간탄심과 양변의 거래를 끊어버리고 비로소 참성품을 깨달아 대자유를 누리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보림사의 뒷산 이름이 가지산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은바의 지혜인 “바로 사람이 부처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주선사는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는 물음에 어느때는 있다고 했지만 어느때는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여래선과 조사선의 갈림길이 있기에 향상일로의 수행자는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관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장경의 핵심인 열반적정 상락아정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번 크게 죽어야 살아날수가 있습니다. 불성이 있다는 믿음에 대신심을 발하고 없다는 말에 크게 죽어야 대분심과 대의심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반야지혜를 깊이 믿으면 온 우주와 생명들이 하나의 그믈망처럼 연결되어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각기 망마다 구술이 빛나는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라입니다.

밀다는 반야에서 일어나는 일체 번뇌와 대상을 바로 알아차리면 다시 용광로에 떨어지는 한송이 눈처럼 반야로 화합하게 되는데 마치 벌이 일체 꽃에서 꿀을 따지만 꽃을 다치지 않고 한맛의 단맛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사람이 한 생각이 일어나거나 대상을 만나 모두가 마음임을 바로 알아차려 한걸음 나아가 어째서 부처님은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는가 간절한 의정을 일으키면 일심의 일미를 이루는 것입니다.

도량에는 관광객들이 연휴를 맞이하여 모처럼 가득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을에서 짖지 않았다는 밀다의 입이 터져서 우렁우렁합니다. 자호선사의 개가 다시 와서 일체 사량분별과 간탐과 애증, 유무양변의 거래를 끊어버리려는 듯 사납게 짖고 있습니다. 일주문 입구에 개조심하라는 경문을 써 붙여야 겠습니다.

어느덧 도량은 견공들이 반야바라밀다를 끝없이 연출해내는 반야수행도량이 되었습니다. 신도들도 새해는 보림사가 더욱 활기차고 안정된 도량이 될거라고 덕담을 나누고 갑니다. 새해는 동계올림픽에 북쪽의 선수들도 함께 참여하여 남북이 서로 평화롭고 사람마다 반야지혜를 깨달아 국민이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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