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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06 10:20
삼사순례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03  

삼사순례

겨울 가뭄에 기다리던 단비가 흠뻑 내렸습니다. 비가 그치고 새벽 도량석에 나가보니 연밭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참으로 청아하게 들려옵니다. 잠시 숨을 멈추고 소리를 따라서 들어가니 소리는 금방 흔적없이 사라지고 고요하면서도 신령스러운 보리 자성이 홀연히 드러납니다.

오늘은 우리절 신도님들과 정초기도를 마치고 남해로 삼사순례를 떠나는 날입니다. 삼십여만에 다시 밟는 보리암의 풍광이 눈앞에 나타나고 가슴이 설래이는 것은 신도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범부가 발심을 일으키는 것은 홀연히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보리자성이 부처님과 더불어서 사람마다 차별없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상사에 온전하게 쓰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중생의 업력을 녹이기 위해서는 더없고 위없는 깨달음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발심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야 합니다. 보리암은 역사적으로 이태조가 백일기도를 성취하고 개국을 해서 산을 금으로 덮으라는 뜻으로 금산 보리암이라고 했다는 설화가 전해옵니다. 문득 깨달아서 보고 듣고 지각하는 소소영영한 보리자성을 순간순간 자각하면 하루에 황금 만냥을 쓰는것과 같다고 보조국사는 수심결에서 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항상 금산 보리암에 상주하는 것입니다. 또한 까치 울음소리를 통해서 관세음보살이 깨달음에 들어간 인연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바닷가에 상주하며 고해의 중생들을 천수천안으로 살피시며 소리를 통해서 보리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무량한 복덕을 구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범부들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믿고 걸음마다 잊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문득 듣는 성품을 요달하기 때문에 보리자성을 증득하기 위한 순례를 떠나야만 합니다.

두 번째 순례길은 용문사였습니다. 삼십여년전 초발심시절에 잠깐 머물렀던 용문사는 참으로 소박한 지장도량이었는데 많이 정비가 되어서 진입로옆 계곡의 바위들이 웅장하고 고법당에 부처님은 변함없어 더없이 반갑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끝없이 흐르는 중생의 업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기도와 염불 참선은 마치 용광로와 같아서 삼매의 불로 중생의 업력을 녹이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발심의 원동력이 약하면 끝까지 중생의 업력의 흐름을 거슬러 차단하고 번뇌장과 소지장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산내 암자인 염불암 입구에는 걸음마다 나무아미타물 일념삼매를 성취하면 여기가 바로 극락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삼십여년전 오직 수행일념으로 이름없이 살다간 초삼선사님이 계셨고 흠모했던 선지식이었기에 더욱 숙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훌륭한 상호를 갖추었고 우람한 목소리를 가진 초삼선사님은 스스로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고 하시면서 어린 나이에 일찍 발심을 했다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다시 신심을 내어 입방을 청했지만 끝내 허락을 해주지 않아서 되돌아섰던 발걸음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마지막 순례길은 화방사였습니다. 이름 그데로 꽃다운 절이었습니다. 수행자가 홀연히 발심을 이루어 문득 돈오를 이루고 다시 한번 크게 죽어서 용문을 통과하면 비로서 산넘어 꽃피고 새가 우는 한 마을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바로 만화방창 호시절인 화방사입니다.

산새가 아늑하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꽃봉오리를 일깨우며 약사유리광여래불은 묵연히 미소를 짖고 있는 아름다운 도량입니다.

지금 제방선원에서는 수행자들이 동안거를 마치고 보살만행을 실천하고 자기가 얻은 바를 선지식을 찾아가 점검하는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요즈음 제가 불자들도 안거에 들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재는 어느 재가 불자가 갓김치를 가지고 찾아와서 공부를 묻기에 나는 선비가 아니라서 갓을 쓸일도 없고 사는 대중들도 계급이 없어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리둥절하면서 거듭 수행을 물어서 나는 가난해서 가르쳐줄것이 없다고 보냈더니 서운했는지 소식이 없습니다. 출가하여 공문에 들어선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깜깜하여 더욱 삼십년을 정진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