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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7 17:21
불성에는 남북이 없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4  

불성에는 남북이 없다

대웅전 앞에는 불두화가 소담하게 피었습니다. 사월 초파일이 다가오니 점점 부처님 머리처럼 봉긋히 솟아오름니다. 불두화는 연꽃처럼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수없이 많은 작은 꽃잎이 켜켜이 쌓여서 하나의 봉오리를 이루고 꽃이 질때는 산산이 부서저서 바람에 황홀하게 날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제법은 본래 공하고 연생연멸하는 관계임을 깨달은 부처님의 원음을 듣습니다.

이러히 산하대지는 저마다 제빛과 향기로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한편 남과 북은 평창 세계 동계 올림픽을 인연으로 서로의 장벽을 허물고 모처럼 다정하게 마주 앉아서 서로가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통큰 합의를 이끌어내고 평화라는 돈오의 무생곡을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음못이 본래 물인줄 단박에 깨달았다고 해도 그간 적대관계로 살아온 세월이 오래되었기에 온전히 평화의 기운이 실핏줄까지 흐르는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익힌 업장인 대결의식이 가슴속 깊이 숨어있고 주변국들의 시기와 질투를 피할수 있는 안전운행의 방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이미 이목구비를 갖춘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어른처럼 큰 힘을 쓰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남북관계도 점차로 지혜와 자비를 더하여 발전시켜 나가는 점수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어느날 운거도응선사가 천여명의 대중들은 피난을 떠나고 절에 홀로 남아있는데 대란을 일으킨 장군이 찾아와서 목에 칼을 들이대고 물었습니다. 이 대란이 언제나 끝나겠는가 선사가 대답하기를 장군의 마음이 흡족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만족하여 삼배의 예를 올리고 돌아갔습니다. 남북관계가 과연 이번에는 해결될것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이제부터는 서로가 지난일은 헐뜯지 말고 다가오는 일은 늦더라도 참고 기다리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지만 불성에는 남북이 본래 없다는 헤능의 깨달음처럼 자기 부처를 몰록 깨달으면 일체 대결의식과 원망이 사라지고 대만족의 평화가 깃들게 될것입니다.

뒷산 야생 차밭에서는 차가 한창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에 심하게 동해를 입어서 조금 늦기는 했지만 햇차의 향기는 더욱 진하게 다가옵니다. 남북의 관계도 이와 같아서 모처럼 다가오는 평화의 기운이 계속되기를 간절하게 염원하며 저마다 일상에 전념하면서 일터에서 작은 평화를 만들어내는 명상운동을 해야겠습니다.

육조 헤능선사는 일찍이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면서 시장에 땔나무를 팔아서 살아가던 어느날 홀연히 금강경 가운데 마땅히 머무른바 없이 마음을 쓰라는 구절에서 크게 깨닫고 깊은 평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눈의 대상인 모양과 귀의 대상인 소리와 코의 대상인 냄새와 혀의 대상인 맛에 그리고 몸의 대상인 촉감과 생각의 대상을 따라서 생기는 기나긴 고통을 달게 받으면서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벗어나려면 색성향미촉법에 머물지 말고 일체에 걸림없는 마음을 써야 합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로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와 가르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평화의 근본입니다. 더구나 불자는 삼계의 고해에서 벗어나게 해부신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가정에서부터 먼저 작은 평화를 만들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선 먼저 차를 마시면서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식구들이 모이면 차와 다기를 내놓고 찻물을 끓여서 차를 준비합니다. 먼저 스마트 폰은 멀리 내놓고 가족 구성원들이 하루의 일상을 어떻게 지냈는지 자자와 포살로써 허물은 참회하고 그만해서 다행이라고 감싸주고 덕은 칭찬하고 격려해 줍니다. 요즈음은 스마트폰 때문에 가정이나 모처럼 절에 와서도 대화도 없고 법문도 잘 듣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신도들 관계가 예전처럼 소통이 잘 되지 않습니다. 절에서의 만남은 차를 마시면서 신행체험과 함께 수행체험의 이야기가 우선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금생에 부처님 법을 만난 인연에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는 차를 만들며 다선일여의 경계를 춤으로 표현하며 수행을 하고 있는 다인으로부터 보고싶다는 안부전화를 받았습니다. 대밭에서 죽로차를 따고 있노라니 생각이 고요해지고 사방이 밝아진다고 하며 대자연과 하나가 되니 더없이 평화롭고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는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행복해지려면 행복하다는 일념마저 일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말고 바로 찻잎을 따듯이 초기에 바로 회광반조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요하지만 더없이 충만한 선정과 지혜가 원만한 본래의 성품을 깨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보림사의 역사에 나오는 전통차는 차잎을 쩌서 둥근틀에 넣고 찍어내면 마치 엽전처럼 둥근 모양으로 이것을 전차라고 하며 떡차 혹은 돈차라고 불리웁니다. 이것을 삼년정도 항아리에 넣거나 처마밑에 걸어두고 발효가 되면 오븐에서 오분에서 십분정도 굽어서 서너시간 약처럼 달이면 마치 보이차처럼 색과 맛이 나는 발효차입니다.

얼마전에는 북한에서 생산되는 강령녹차가 있는데 품질이 우수하여 세계적이라고 합니다. 한편 부처님 오신날에 차 공양을 올린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차나무가 북한에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겨울에 동해를 입지 않는지가 궁금합니다. 내년 부처님 오신날에는 남북의 산하에 평화로운 기운이 실핏줄까지 흘러서 보림사 차를 가지고 금강산 신계사 부처님께 공양 올리기를 발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