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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2-26 11:16
전라도 수행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55  

올바른 수행을 어떻게 할것인가 

지금 남녁에는 매화가 진한 향기를 토하고 있습니다겨우내 모진 추위를 이겨내는 인고의 세월이 있었기에 이렇게 깊은 향기가 코를 찌르고 있습니다하지만 세상의 봄은 길어야 한철인데  영원한 마음의 봄인 열반은 특별한 시절이 없어 항상하고 즐거워서 언제나 좋은 시절입니다.

지난해는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였습니다그래서 국립나주박물관에서는 보림사 보물 세점과 함께 남도의 문화재 특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하여 고려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고 있는 명칭입니다.

불교의 목적은 일체  고통으로부터 해탈에 있습니다그러면 먼저 고통의 현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하는데 크게 생,,,사인 사고와 애별리고, 원증회고구부득고,오음성고의 팔고입니다또한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환경재난과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일것입니다.

이와같이 고통의 현실을 철저히 자각함으로써 벗어나려는 대발심이 일어나는데 간절한 발심이야말로 수행의 출발점입니다그로부터 수행의 목적지인 완전한 행복인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이러한 성스러운 열반에 이르는 길을 부처님께서는 고집멸도 사성제라고 최초의 설법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고통의 원인은 무시이래로 지은바 무명의 어리섞음과 갈애로 비롯되었으며 무명과 갈애의 소멸을 멸성제라고 합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가 합쳐서 만들어진 이름인데 전주는 온전하고 완전한 열반 즉 영원한 행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여기에 이르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을 여덟가지 바른 길인 팔정도라고 합니다이것을 실천의 길로 라도라고 한다면 전라도는 앞으로 수행의 중심이 될것입니다.

첫째 정견인데 반야의 지혜로 사성제의 가르침입니다.

둘째 정사유는 지혜로 오온을 비추어보고 공함을 사유하는 것입니다.

셋째 정어는 악담과 이간질,교묘히 꾸미는 말과 속이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 정업은 바른 직업을 말하고

다섯째 정명은 바른 생활입니다.

여섯째 정념은 밖으로 일체 대상과 일어나는 일체 생각을 바로 알아치리고 호흡에 집중하는 삼매를 통해서 무상과 고,무아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일곱째 정정은 바른삼매를 기억하고 지속하므로써 일체업장을 녹여내는 깊은 삼매입니다.

여덟째 정정진은 팔정도의 요체인 계정혜 삼학을  쉼없이 닦아서 일상에서도 틈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덟가지 바른 길을 저는 온전하고 완전한 열반의 땅 전주에 이르는 실천의 길로 비유하고 라도라고 하였습니다또한 라도는 빛의 도시 나주와 광주로 온전한 열반인 전주가 펼쳐진 불국정토입니다하지만 전주없는 나주는 헛깨비이며 나주없는 전주는 무기력한 고성과 같습니다그래서 누구나 번뇌의 괴로움과 싸우면서 허기지고 배고플 때 여덟가지 레시피가 있는 팔정도의 전주 비빔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일체 번뇌와 데상을 만나서 들뜨게될 때는 참기름이라는 선정으로 성성적적으로 다스려야 합니다또한 우울하고 무기력할때는 고추장이라는 지혜로써 적적성성으로 이리저리 잘비비게 되면 일상사에 주인이 되고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그러면 하루에 황금 만냥을 쓰게 되는데 이것이 새만금입니다.

한편 전라도인 전주와 나주는 등과 불빛과 같아서 서로 등지게 되면 선정과 지혜가 고르지 않아 기형의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현대인들은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빛을 쫒아서 욕망을 탐하다가 스스로 죽는 불나비와 같습니다그래서 온전하고 완전한 행복의 땅 전주가 내몸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믿고 깨달아서 욕망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이것을 수행의 문에 들어간다고 하여 입류라고 하며 욕망의 흐름을 거스린다고하여 엮류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커다란 관점의 전환이며 삶의 정확한 방향을 찾은 것입니다이제부터는 하루하루 사는 맛이 나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만 합니다불빛을 쫒는 감각적 욕망의 흐름을 거스르는 존재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이것이 올바른 수행으로 가는 첫 관문입니다이제부터는 시작도 중간도 끝도 좋은 온전한 행복의 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하지만 명심할 것은 팔정도의 올바른 실천의 길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팔정도가 없는 수행은 올바른 수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인 트랜드인 명상과 수행의 길에 들어서고 있지만 다시 헤메고 현실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수행의 길에서 방황하는 것은 팔정도가 없기 때문입니다이러한 때를 당하여 선정에 치우처 현실을 떠난 게으름에 빠지고 조그만 지해가 주범인줄 모르고 헤메게 될 때 바로 알아차리고 견줄바없는 평등의 반야지혜인 무등산에 올라가서 철저한 수행 점검을 해야 합니다그리고 서석대 뾰쪽한 봉우리에 서서 양변에 치우친 두손을 놓아버려야 합니다천길만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죽는 것이 크게 다시 사는 길임을 자각하게 되면 문밖이 바로 온전하고 완전한 행복의 길임을 깨달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