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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6-19 16:48
보림사 학술 세미나 논문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787  
가지산파의 차 전승과 보림사의 다맥
 
 
최석환(월간차의세계 발행인)
 
가지산 보림사는 신라구산선문중 가지산파로 신라 말 도의국사를 개조로 한 보조체징에 의해 중창되면서 가지산문의 문풍이 크게 퍼져나갔다.
체징은 해동선종의 초조 도의로부터 부촉을 받은 염거(廉居) 현묘한 도리 깨달았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체징은 허회(虛會) 등과 함께 중국 구법길에 오른다. 여러 선지식을 두루 탐방하며 서로 문답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체징은 여러 선지식을 만난 뒤에 말하길 내가 많은 선지식을 만나보았지만 우리 조사가 설하신 가르침보다 나을 것이 없거늘 어찌 멀리까지 왔는가라고 탄식하며 말한 840 귀국길에 오른다. 귀국한 광주 황학(黃壑) 절에서 대중을 가르쳤는데 소문은 삽시간에 궁중에까지 전해진다. 헌안왕(憲安王)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존숭하여 선의 가르침을 열어 것을 희망한다. 그러나 체징이 끝내 사양하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지산 보림사(寶林寺) 주석해줄 것을 청해 체징은 가지산 보림사로 들어와 산문을 연다. 그로부터 보림사는 가지산파의 발원지가 되었다. 가지산파는 당의 서당지장(西堂智藏) 선사로부터 심인을 받고 돌아온 도의 국사를 시조로 염거를 거쳐 체징에 의해 선이 활짝 열매를 맺었다. 산문에 이르면 가지산 보림사 편액이 이를 말해준다. 가지산은 원래 원표대덕(元表大德) 처음 개창한 이래 많은 선지식이 거쳐갔다.
그런데 근대 가지산문을 개창한 원표대사가 들어나면서 가지산문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원표대사가 중국에서 귀국했을 때 차와 선을 들고와 보림사의 다맥이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더욱이 전남 장흥의 가지산 보림사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일찍이 주목을 받아왔다. 보림사가 청태전의 출발점이 되면서 보림사 차맥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금까지 보림사의 제다법을 놓고 이유원의 《임하필기》를 근거로 구증구포 방식으로 몰고 갔다. 더 나아가 장흥군은 보림사 인근의 관산읍에 청태전 생태체험마을을 조성하고 청태전 알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필자가 2009년 3월 닝더(寧德)의 화엄사를 찾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화엄사 후이징(惠淨) 스님으로부터 맛본 한 잔의 차가 1990년대 말 필자가 보림사 사하촌에 살았던 이정애 할머니가 우려낸 차맛과 일치하면서 보림차의 원형을 찾게 되었고, 보림사의 차맥을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아 이 감미로운 차맛
2009년 3월 5일이었다. 푸젠성 닝더의 화엄사 주지 후이징 스님과 마주 앉았다. 스님이 주석통을 열자 주석통 사이에서 우러나는 차향이 이내 방안 가득 퍼져 나갔다. 이윽고 차를 한 움큼 집더니 개완잔에 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리고 차를 우려낸 뒤 차를 권했다. 차를 받아 음다하는 순간 향긋한 차향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