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림사 :::
 
HOME > 커뮤니티 > 선차의 향기
 
작성일 : 15-12-10 21:19
다시 초심으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221  

다시 초심으로

 

첫눈이 내림니다. 차꽃처럼 순백의 첫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어느덧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시작과 끝은 둘이 아니라고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은 하늘의 서쪽끝에 내몰린 양떼구름처럼 금방 흩어질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합니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들은 어느해 보다도 년말을 맞이하여 삶이 힘들고 지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일체는 고통이다라고 선언했고 또한 이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했으니 고통을 참고 이겨나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아들의 사망선고를 듣고서 혼절하는 어머니는 끝없는 절망을 딛고 점차로 정신을 다시 차리고 일어남니다. 아들의 죽음은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었음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고의 본질이 텅비었다는 고통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인 고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들은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고통이 찾아왔느냐고 되돌아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의 일을 알고 싶으면 금생에 받는 이것이요, 또한 내생 일이 궁금하다면 지금 짖고 있는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고통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갈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

금년 양의 해를 시작하면서 누구나 큰 원을 세우고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만 그 결과는 차이가 많아서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또한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함을 참지 못하면 미움과 원망으로 수많은 밤을 지세우게 되어 긴긴 겨울밤이 얼마나 고통인줄 절감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진실하게 살피다보면 어느 한 순간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는 마음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본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참마음이고 신령스러운 성품이라고 하여 영성이라고 합니다. 이 마음은 위로는 부처님과 더불어 일체 성인들과 나는 차별이 없어 본래 평등합니다. 하지만 지금 고통의 원인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참마음의 밝음이 잘못된 습관으로 하여금 가려져서 비롯되었습니다.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어둡다가도 일순간 바람이 불면 홀연히 구름이 걷히고 상하가 통명하게 드러나 본래 밝음을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통을 자각하게 되면 여기에서 나와 남의 고통이 둘이 아님을 깨달아 해결해 주겠다는 대자비심이 일어납니다.

보살은 나와 남의 고통을 해결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사람을 지칭하는 성스러운 이름입니다. 이러한 대자비심을 발원한 수행자가 자나깨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경주하다보니 어느덧 내 존재의 실상이 본래 밝음이요 완벽한 행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을 선가에서는 돈오라고 하며 견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 이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일체 언어와 행동은 여덟가지 바른 길인 팔정도를 실천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바른 말인 정어입니다.

언론인의 사명은 바른 말로 세상의 어둠과 고통을 화합하고 중재하는 보살행의 실천에 있을 것입니다. 정론 직필이야말로 언론의 생명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언론은 공기와도 같아서 조금만 치우치면 갈등을 조장하여 세상을 오염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돌을 맞이하는 장강신문의 일년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앞으로 언론의 사명을 충실히 실천하여 지역사회의 갈등을 원융화합으로 조정하는 보살의 역할에 힘써 중도정론을 펼쳐 주시길를 부탁드림니다.

창밖에는 세찬 겨울 바람에 눈비가 흩날림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힘찬 도약이 있기를 축원하며 창간 두돌을 축하드림니다.

일선스님

장강신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