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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9-09 11:35
법수사지와 보림사 심방, 천년 왕손 나주김씨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더욱 다지다
 글쓴이 : 김근학
조회 : 3,900  



                      지상 김근학(나주김씨 전 중앙종친회장)


 입추와 처서를 지나면서 찬란함과 그 뜨거움으로 천지를 달구고 뒤흔들었든 여름은 서서히 풍요와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게로 자리를 물려줄 차비를 하려고 기웃 기웃하는 즈음에 신라김씨 왕조의 적통 후예인 나주김씨중앙종친회(회장 33세 김기환)에서는 천년왕손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한층 공고히 하고 역사성과 정당성을 더욱 다지기 위해 나주김씨의 비조(鼻祖)인 경순왕의 계자(季子) 황왕자(湟王子)가 입산 범공(梵空) 스님이 되시어 나주김씨가 태동하게 한 성지인 경북 성주 법수사지(法水寺址)와 15세 월당(月塘)김대경(金臺卿1305~1377)선조께서   “가지사판상운”을 지은 현장으로 문학의 향기가 짙게 서려있는 전남 장흥 천년고찰 보림사(구 가지사)를 차례로 심방하기위해 길을 나섰다.
이른아침 7시에 양재역에서 출발한 전세버스 나이스관광에는 종친회장을 비롯한 고문, 임원진 등 30여명의 종친들이 숭조위선(崇祖爲先)의 숭고한 뜻을 마음에 가득 담고 참가하였는데, 특히 오늘 여정(旅程)에는 1000만 신라김씨를 대표하는 신라김씨연합대종원 김수길(경순왕 태자 鎰 ,부안김씨 후계)총재께서 격려차 동행하게 되어 이번 우리행사가 의미가 더 깊고 빛나게 되었다. 이날 날씨는 조상을 위하는 후손들의 지극한   정성이 뻗친 때문인지 행사시간 내내 대체로 맑은 편이고 하늘에는  군데군데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바람은 산들거려 성지순례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우리 일행은 곧바로 경부  고속도로 진입하여 달려가다가 신갈IC에서 강릉방향 영동고속도로로 길을 바꾸고 여주 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진입하여 한참을  달리다가 문경휴게소에 들려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른후 다시 출발해  남성주IC에서 법수사지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나갔다.
 
 
법수사지삼층석탑에는 계자 김황의 충절과 천년 한이 녹아있다

 법수사지와 경남 합천 해인사로 이어지는 59번 국도로 접어들어 잠시 달리자 영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가야산 자락을 따라 난 길은 점점 산을 향해 전반적으로 완만히 올라가면서 오르락내리락하기를 서너  차례 반복하면서 약 4~5km정도 진행하자 계자 황왕자가 영사입산 (永辭入山)하여 범공선사가 되신 숭고한 얼이 고이 깃들어 있는 우리 나주김씨의 성지(聖地)인 법수사지삼층석탑이 우거진 나무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기 시작하더니 버스가 언덕배기를 올라가자 마침내 법수사지삼층석탑이 늠연(凜然)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우뚝 다가섰다.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법수사지로 들어가면서 보니 사지(寺址)전체가 얼1.PNG

마 전에 끝난 문화재 당국의 1차 발굴에 의하여 삼층석탑이 있는 장소만 제외하고 일정한 형태로 파 헤쳐져 있었다. 발굴된 유물은 문화재 당국에 의하여 분류 중에  있다고 하며 들리는 얘기는 분석 결과에 따라 법수사 복원, 기념관  설립 등 활용방안이 다각적으로 강구될 것이라 한다.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꽃바구니를 정성스레 가져다 삼층석탑 앞에 봉안하고 참석자 전원이 서서 합장(合掌) 배례하고 삼배(三拜)를 올린 후 김기환 종친회장과 김수길 신라김씨대종원 총재를 선두로 탑돌이를 했다. 그런 다음 종친들은 삼층석탑과 안내문을 찬찬히 훑어보기도 하고 기념사진도 촬영 하면서 2009년 7월11일 법수사지삼층석탑에 황왕자 범공선사 사실   기록기념 헌공다례거행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고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당시 중앙종친회(회장 36세 김근학)에서는 계획을 면밀히 잘 수립하였었고, 현장에서는 김성광(36세)박사가 차질 없이 일을 추진했기 때문에 추진한지 1년6개월 만에 문화재(당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82호, 현재는 국가지정 보물1656호)인 법수사지삼층 탑 안내문에···
 [<삼국유사에 신라 경순왕의 계자인김황 (金湟, 나주김씨의 비조)이 승려가 되어 법명을 범공(梵空)이라 하고 법수사에 머물면서 해인사에 드나들며 산승(山僧)으로   일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는 내용을 등재하게 되었는데 이는 황왕자께서 신라가 종언을 고할 때 영사입산  산승(山僧)이 되신지 1000여년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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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종친들의 법수사지삼층석탑 심방에  즈음하여 계자 황왕자 범공선사의 거룩한 충절과 의기가 넘친 생애를 다시 한번 고찰하고 상기해 보고자 한다. [<계자  황 왕자는 부왕인 신라 56대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께서 935년 국운이 쇠하여 더 이상 국가를 존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가없는 경천순민(敬天順民)의 대의에 따라 신라 천년사직을 신흥 고려 태조에게 손국하려 할 때 형인 태자 일과 함께 어찌 천년사직을 하루아침에 남에게 넘겨 줄 수 있느냐고 극력 반대하였으나      가납하지 않자 신라에 대한 충절과 의리를 지켜 고려 태조가 제수한 평장사를 사작불수(賜爵不受) 하고 왕자 빈(嬪) 옥저하씨(沃沮河氏)와 어린 아들 운발과 우발 형제를 속세에 두고   (棄妻子,기처자) 부왕의 영정(影幀)을 그려 모시고 통곡하며 망국한을 달래고 업장을 소멸하고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는 사부대중과 억조창생의 무사안녕을 빌고 국민통합과 국태민안을 기원하고자 가야산  법수사로 영사입산하여 범공스님이 되어 해인사를 왕래 주석하다 열반(涅槃)하시자 고려 조정에서는 황왕자의 충절과 의기는 물론 천명   (天命)을 알고 두 아드님은 출사(出仕)시키고 범공선사가 되어 중생제도에 용맹 정진하여 민생안정과 국태민안에 기여하신 의연(毅然)하고 아름다운 의덕(懿德)과 의행(懿行)을 기려 의영공(懿英公)이라는 시호를  내려 후세의 귀감(龜鑑)으로 삼도록 하였으며 개성 오룡산(五龍山)에 장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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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를 “정통성과 자주성”을 정립하는 입장에서 1778년   동사강목을 저술한 실학자 순암 안정복(1712~1791)은 신라가 귀려   (歸麗)시 “계자가 충절을 지켜 기처자하고 범공스님이 되어 종신하신 일은 중국의 촉한(蜀漢) 멸망 시 북지왕(北地王) 유심(劉諶)의 충절과 관련한 고사에 비견할 정도로 의기가 장렬하지만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참으로 애석하다” 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 역사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충절이 높은 분으로 평가하였다.
우리후손들은 법수사지 삼층석탑을 찾아 숙연하고 경건한 자세로 1000년 전 황왕자께서 보여준 충절과 의기, 효경심(孝敬心), 의연하고 사려 깊은 분별력과 예리한 통찰력에 대해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아로새기며   참배 헌화하고 탑돌이를 한후 황왕자의 천년 한을 달래고 얼과 정신을 기리고 선양 계승하자고 다짐하면서 아쉬움 속에 법수사지를 총총히 떠나 전남 장흥 보림사를 향해 출발하였다.
보림사는 법수사지에서 220km 가량 떨어진 거리인데 해인사IC에서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88고속도로로 진출하여 광주까지 달려가 호남 고속도로로 길을 바꾼 후 국도와 지방도로 길을 바꾸어 법수사지를  출발한지 2시간 반만에 보림사에 도착했다.


월당 문학의 향기가 다시 피어 오르다

 전남 장흥 보림사(구 가지사)는 고려 말 문신이며 대학자로서 사유장(師儒長)이라고도 불리웠던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보문각 대제학(大提學) 등 청요직(淸要職)을 지내시며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등 삼은과 삼봉 정도전, 양촌 권근 등 등···, 고려 말 조선 초 수많은 훌륭한 성리학자들에게 사사(師事)하고, 교유(交遊) 창수(唱酬) 하며 문명(文名)으로 일세를 풍미(風靡)하다가 졸(卒)하신 후 문충공(文忠公)의 시호(諡號)를 받으신 바 있는 나주김씨 15세 월당 김대경 선조께서 1356년 가지사(현 보림사)를 방문해 가지사판상운(迦智寺板上韻)을 지으신바 있는 사찰이다.
 월당공이 찬하신 시편(詩篇)은 오늘  게판(揭板)하는  ‘가지사판상운’   이외에 두 편의 시가 동문선(東門選)과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등재되어 널리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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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공께서 언제 어찌하여 개경에서 천리가 넘는 장흥 가지사에  와서 판상운을 지으셨을까? 
판상운을 찬한 시기는 가지사와 관련된 사료와 월당공의 “도안로현시”를 분석하여 보면 1356년 경으로 추정된다. 공께서 지은 시문인     ‘안로현에 이르러 첫 공사를 보며’의 내용 중 ‘백년 인생에 50이 넘으니’ 구절이 나오는데 공께서는 1305년생으로 안로현(安老縣)에 사명 (使命)을 띠고 왔을 때가 50세가 갓 넘었을 때이고, 고려의 왕사(王師)와 국사(國師)를 지내신 태고화상 보우스님이 가지사에서 구산문(九山門)을  통합하는 일을 추진하던 때가 1356년(공민왕5년)이므로 개성에서부터 보우스님과 교분이 있던 공께서 보우스님이 가지사에 주석(駐錫)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지사에 방문 했던바, 문장이 당대에 독보적(獨步的)이던 공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태고화상이 글짓기를 청해와 시를 지었으며 이시를 목판에 판각하여 ‘가지사판상운“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이 시문이 조선 성종 9년(1478) 왕명으로 양성지, 서거정 등 학자들이 신라 때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 초기까지 전해온 명시 명문 등 훌륭한 글을 집대성하여 동문선을 펀찬 할 때 수록되어 인구에 회자되어 왔었으나 전란과 화재 등 굴곡진 무상한 역사의 흐름과 세월의 무게 때문에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유실돼 현재는 보림사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고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근학 고문이 가지사판상운을 재현하려고 중앙종친회회장 재임 시인  2009년부터 보림사 측과 접촉해 왔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가 2014년 여름에 보림사 일선(日禪) 주지스님을 예방한 자리에서 가지사판상운의 존재에 대해 얘기하고 판상운을 재현하여 보림사 성보박물관에 게시 하는 것에 대해 넌지시 제의했더니 주지스님께서 당초와 같이 판상운으로 제작하여 게시하는 것이 좋겠다고   흔쾌히 양해해 주시어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참석하여 자리를 빛낸 가운데  조촐한 게판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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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판식에서 기환회장의   ‘가지사판상운의 게판이  천년왕손인 나주김씨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요지의 인사말씀이 있었으며, 뒤이어 ‘근학고문의 가지사 판상운의 게판 추진경과에 대한 설명’이 있었고, 보림사일선 주지스님으로부터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가지사판상운의 게판을 계기로 연못속의 달(月塘)처럼 영롱하게 빛나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축사가 있었다.
천년고찰 보림사는 절 이름이 함축하는 바와 같이 보물의 숲을 이루는 사찰로 월당공이 가지사판상운을 지을 당시 고려 말까지는 가지사로 불리다가 보림사로 이름이 변경된 것으로 보이는데 보림사에는  판상운에 언급된 국보 제44호인 삼층석탑 등 국보2점과 보물8점, 전라남도지방유형문화재18점, 사료적가치가 높아 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있는 많은 전적류 등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어 역사의 흐름과 사찰 미술사를  볼 수 있는 보물 창고 같은 사찰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 이번 판상운의 게판은 월당 선조님의 그윽한 문학의 향기가 더욱 피어오르게 하는  동시에 우리 나주김문의 역사성과 문화와 전통이 있는 문중임을 널리 알리는 위업이라 할 수 있다.


 계자 황왕자의 숭고한 얼과 월당의 그윽한 향기 살려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가자!

이번 중앙종친회 주관으로 시행한 우리나주김씨 비조인 경순대왕의  계자 황 왕자 (범공 선사 의영공)의 숭고한 얼이 깃들어 있는 경북  성주법수사지삼층석탑의 참배와 월당의 문학의 향기를 다시 피어오르게 한 전남 장흥 보림사의 가지사판상운의 게판식의 참례는 천년을  굳건하고 향기롭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어온 신라김씨 왕조의 적통 후예인 우리나주김문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역사성과 정당성을 확인하는 아주 뜻 깊고 보람 있는 소중한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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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법수사지 삼층석탑에 계자 황왕자의 사실(史實)을 기록하겠다고 했을 때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한 분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러나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신념으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몇 몇 사람이 밀실에서 추진하지 않고, 터 넣고 공식적인 시스템에 의한 절차를 거치며, 혹시 막히면 다른 방법을 찾아  은근하고 끊기 있게 추진한 결과 일이 순조롭게 탄력을 받으면서 마침내   이루어 내어 천년 왕손인 나주 김문의 정통성과 정당성, 역사성을 다지고 일체감과 구심체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환부역조하려는  일부문중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를 만든 것에 대해 보람과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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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사판상운의 재 게판도 월당선조의 문학적 향기가 다시 널리 멀리 피어오르게 하였음은 물론,   우리문중이 문화와 역사가 그윽한 문중임을 보여주는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다. 더욱이 가지사판상운 게판 준비할 때 보여준 중앙종친회의 준비과정은 아주 모범적이었다. 가지사판상운의 게판의 당위성에 대한 의견이 제기되자 임원회의의 논의를 거치고,여러분들의 의견을 청취 하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추진하였기 때문에 성공리에 마치게 되었음은 정말로 높게 평가 받을 일이다. 숭조위선하는 종사(宗史)는 이런 방식으로 추진되어야한다 그렇지 않고 비공개로 몇 몇 사람만 알게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종사(宗史)가 아니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종사(宗事)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면 충분한 고증도 이루어 지지 않아 시비가 이어지고 오류도 있어 후손에게 그릇된 역사를 가르치게 되고, 후유증과 여진(餘震)도 귾이지 않아 종친간에 갈등 반목 대립 분열이 증폭될 수 있다. 이번 가지사판상운 게판에서 보여준 중앙종친회의 업무처리는 앞으로 업무처리의 전범(典範)으로 삼아 우리후손들이  훌륭한 조상님들의 얼과 향기를 살리고 계승하여 조상과 후손에게 부끄럼없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하자.

                                      (2015. 9. 5.)